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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허송세월

한 3주 전 짝꿍이 가는 책모임에서 포트럭을 한다길래, 비건두부브라우니를 들려보냈다. 학원에서 배운 논비건 브라우니를 한 두번 만들어봤고, 비건두부브라우니는 처음이었다. 그냥 브라우니만들려다가 버터의 눅진한 설거지(그 기름 설거지할때 너무 싫음)가 싫어서 제대로 펼쳐보진 않았던 쿡앤북 레시피북을 펼쳤다. 나가야할 시간은 다가오고 황급하게 논비건 브라우니 레시피와 쿡앤북 레시피를 막 합쳐서 그냥 했다. 파운드케익 틀에서 꺼낸 브라우니는 잘 안익은건지 덜 식은건지 막 흘러내릴 지경이었지만, 그냥 반찬통에다가 빨리 넣어서 내보냈다. 창피할 지경.... 그랬던 비건두부브라우니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같이 먹었던 이 중 한 분(안면있는 분)이 주문할 수 있냐는 요청을 해왔다. 너무 좋아서 연락받고 방방 뛰었는..
20년 3월 8일의 하루. 아침 8시 10분 즈음에 일어났다. 꾸러미에서 와서 남은 냉이와 어제 한살림에서 사온 두부 반모, 이모가 담근 된장 풀어서 끓였다. 생선이 먹고싶어지던 어제, 몇달 전 엄마가 챙겨주어 냉동실에 넣어놨던 조기가 퍼뜩 생각났다. 냄새 감당이 어려운 굽기는 그만하고 한번 쪄보자고 검색해보니 조기찜이 의외로 쉽다. 다만 '맛술'이나 '청주'가 꼭 있어야 한다는건데..... 이미 어제 한살림에 다녀온지라 아침을 먹고 초록마을로 향했다. 가다가 집 근처 마트에 가서 맛술을 살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슨 '영양강화제'니 어쩌고니와 외국산 쌀이 구성성분이다. 초록마을은 11시부터 연다길래 산길로 조금 고불고불 돌아가고 은평구에서 제일 오래된 아파트라는 미성아파트 지나, 불광문고에 가서 잠시 ..

6년이 넘는 시간동안 연애를 하면서, 크리스마스는 아주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알뜰살뜰 데이트하는 우리로서는 비싼 곳을 예약해서 식사를 하거나, 치렁치렁한 선물을 준비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까웠고 굳이 크리스마스에 그래야하는 이유도 느끼기 힘들었던 듯 싶다. 그저 여느때의 데이트와 크게 다름없이 맛있는 걸 먹고 같이 걷고 여차하면 케익 한 조각 먹는 그정도 였던 듯 싶다. 최근의 크리스마스를 돌이켜보자면 재작년엔 싸웠고 작년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무 기대없이 간 명동성당에서 춥지만 야외 합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급하게 명동성당 밑에 서점에서 서로 책을 골라 선물해주는 정도로 끝맺었다. 아, 크리스마스엔 비싸질 뿐만 아니라 붐비는 모텔을 생각해 우리는 크리스마스면 그 또한 생략하고 정작 당일에는 ..

걸어서 20분 + 자전거 5분 이렇게 은평 뉴타운 쪽으로 가면 한살림 구파발매장과 두레생협 진관점에 갈 수 있다. 오늘의 장보기 목표는 해독주스 재료 -양배추, 당근- 사러. 먼저 들른 한살림은 양배추와 당근이 쏙 떨어진 상황. 지난 번에 주스용 당근을 1kg에 3천원 안되게 사서 상태가 썩 좋은건 아니지만 가격대비 양이 많아 아주 잘해먹었다. 그러나 한살림은 올때마다 할인하는 것들이 손을 잡아끈다. 야채 할인이 무려 50%까지. 한봉에 보통 3천원이 넘지 않다보니 500~1500원 사이로 야채 그득한 한봉을 구입할 수 있을 때가 많다. 물론 유통기한이 다다른 가공식품도 할인, 할인, 할인. 그래서 계획에 없지만, 냉장고에 본가에서 가져온 반찬이 있지만, 난데없이 구입하게 된 메밀묵(3200원->1600..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떡 수업에서 들은 '상추떡'(흰 팥앙금, 거피팥을 이용한 시루떡인데 상추가 들어감)을 집에서 만들기 위해 상추가 필요했다. 집 근처 농장의 비닐하우스 '준식이네'에서 3천원어치 상추를 샀는데,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다. 애초에 3천원 어치를 기본으로 파는 집인 데다가 상추 농사 끝물이라 그런지 포기째 뽑아놓은 상추들을 뭉터기로 아주머니께서 넣어주셨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추떡에 들어가는 상추의 양은 많지 않았다. 이럴 거면 생협에서 천원어치만 사올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정도로 그득한 상추들은 매끼니마다 우리의 상에 올라왔다. 그러나 애를 써서 상추를 마구 먹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느날 하우스 메이트가 말했다. "고기라도 구워먹어야 없어질텐데" 그게 무슨 소리냐며 왜 ..

오늘 오후 다섯시 반. 멧돼지를 보았다. 한 10미터 거리. 집에서 나와 50보만 걸어가면 북한산 둘레길 밑 수리공원이 있고, 하루에도 두세번씩 거길 지나고 그 곳에서 운동해온지 세 달째. 운동하며 걱정했던 두가지가 있었다. 남성 범죄자와 멧돼지. 멧돼지의 경우 정말로 마주칠 수 있다는 염려가 들었다. 몇주 전 쯤 처음으로 밤 10시가 넘어서 늦게 공원에 운동을 하러 나갔는데 아무도 없는 와중에 산에서 내려온 걸로 보이는 대형견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재빨리 시선을 피해 내 갈길 가니 멈칫했던 개 역시 제 갈길을 갔고 다시는 밤 9시 이후 공원 쪽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아직 어둠이 다내려앉지도 않은 오후 다섯시 반에 스트레칭 기구에서 한적하게 다리나 휘저으며 노래를 듣던 와중 이었다. 공원..

오늘 아침 산책에서 40여분간 나눈 대화. 1. 집앞 방앗간 주인아저씨 "어서오세요" 나 "쌀 빻을 수 있어요?" 주인아저씨 "아 쌀은 안해요 ㅎㅎ" 손님이 있을까 싶은 골목길에 있는데 가끔 보면 할머니들 몇몇이 앉아 있고 고추 빻는 냄새가 풀풀 나는 곳. 2. 집에서 5분 떨어진 방앗간 겸 떡집 나 "쌀 좀 빻을 수 있을까요? 뿔려왔는데" 주인아저씨 "예 잠깐만요" (신용카드 놓고 핸드폰으로 뭔가 결제중) 주인아저씨 "소금간 안해드려도 되죠?" 나 "네" 나 "얼마 드리면 될까요?" 주인아저씨 "3천원 주세요" 딱 두번 기계를 돌려서 새 봉투에 담아주심. 아 봉투가져올걸! 떡 구경하면서 같이 사먹고 싶었는데 내가 만들 떡 다먹어야할 생각에 다음으로. 3. 그 방앗간에서 30보쯤 떨어진 약국. 나 "빨간..

더덕까기 배달음식이 진을 치는 요즘, 우습게도 집에서 밥을 해먹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갖은 재료가 모두 손질되어 꺼내어 냄비에 모두 끓이기만 하면 되는 '요리 키트(KIT)'가 유행한다. 껍질이 벗겨진 감자가 진공포장되어 마트에 있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한 나로서는 키트 역시 낯설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다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포함된다. 말마따나 쌀을 씻고 밥을 안치는 것, 갖은 양념을 넣고 요리를 하는 것, 육수 또는 채수를 끓이는 것, 뭔가를 굽거나 부치는 것 등등. 요리 키트가 유행하는 건, 이 중 제일 '버겁게' 느껴지는 재료를 다듬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일테다. 껍질을 벗기고 물에 씻어 헹구고, 씨를 발라내고 어쩌고 저쩌고를 모두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얼마나 간편한가. 본가에 살때 요리광인 엄..